개발자가 되고 싶은 이유

나는 '왜' 개발자가 되고 싶은가?

이 글을 작성하면서 개발자가 되고 싶은 이유에 대해 돌아보고 누군가가 '왜' 개발자가 되고 싶은지 물어본다면 이 글을 보여줄 것이다.

0. Intro

비전공자인 내가 왜 개발자라는 꿈을 갖게 되었는지 설명하기 전에, 먼저 나에 대해서 설명해보려 한다.

20살의 나는 꿈도 없고, 목표도 없는 미련한 대학생이었다. 

남들 하는 대로 적당히 공부하고, 큰 고민 없이 성적 맞춰서 전문대에 입학했다.

1학년 때는 대학에서 알려주는 대로 적당히 공부하고 졸업해서 취업하는 미래를 그렸다.

하지만 1학년이 끝날 무렵 배우고 있는 전공에 대해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고, 서울에서 학교 다니는 친구들을 보고 나도 서울에서 대학생활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무작정 서울에 있는 대학교로 편입을 하기로 결심했다.

성인이 되고 처음으로 목표가 생겼다. 

 

1.  No pain, no gain

 

21살이 되던 1월 겨울, 편입에 대한 정보들을 알아보았다.

서울 소재의 대학에 가려면 높은 경쟁률과 상당한 난이도의  편입영어를 공부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첫 번째 난관에 부딪힌다. 

영어라면 중학생 때부터 질색하였고, 수능 영어조차 공부하지 않았던 나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포기할까 말까를 며칠간 고민했었다.

그리고 편입을 하려면 전문대를 졸업해야 했기 때문에 학교를 병행하면서 편입 공부를 해야 했었다.

학교 성적을 포기하고 편입 공부를 할지, 흥미 없는 전공 공부를 계속할지 선택의 기로에 섰었다.

나는 처음으로 목표가 생겼고 도전조차 하지 못하고 포기하면 앞으로 내가 어떤 것도 해내지 못할 것 같다 라는 생각을 하여 편입을 선택하였다. 뒤 없이 학교 성적을 포기하고 무조건 편입에 합격한다는 마인드로 공부를 시작했다. 

무모한 건지 모험심이 강한 건지.. 편입에 떨어지면 군대로 도망갈 생각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무모했던 것 같다.

편입 합격에 학교 성적이 큰 비중은 차지하지 않았기 때문에 졸업할 수 있을 정도로만 성적을 유지하고 편입영어에 올인했었다.

 

그 과정은 역시나 평탄치 않았다.

고등학교 수준의 영어단어조차 알지 못했던 나에게 편입영어단어는 외계어 수준이었다. 그래서 처음 공부할 때는 영어단어 공부시간이 전체의 70%를 차지했다. 이동하면서 걸을 때나,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는 핸드폰으로 단어책을 찍어 사진으로 공부했었다.

영어단어를 공부하면서 단어의 한글 뜻조차 잘 몰라 국어사전도 같이 봤어야 했다..

지긋지긋한 단어책은 시험 당일날까지도 끼고 살았다.

 

공부하는 기간 동안 뼈를 깎는 노력을 통해 운 좋게도 약 30:1의 경쟁률을 뚫고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에 최초 합격을 했다.

그 당시 놀라서 핸드폰으로 노트북 화면을 찍은 합격결과 사진이다..

 

2.  Time never stop

22살이 되던 2월 겨울, 작년과 달리 나는 1년 동안 꿈에만 그리던 서울에서의 대학생활을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2020년 3월 2022년 5월인 아직까지도 종식되지 않은 코로나19가 전국적으로 확산이 시작되며 비대면으로 개강을 하게 된다.

 

내가 편입을 한 이유는 특정한 전공을 배우고 싶어서가 아니라 단지 서울에서 대학 생활을 하고 싶어 편입을 한 것인데 그것을 못하게 되었다. 목표는 이뤘지만 허탈감이 상당히 컸었고, 3월 한 달 동안 방황하면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었다.

정신 차리기 위해 군대를 갔다 오라는 친구들의 조언으로 가장 빨리 입대할 수 있는 날로 지원을 하여 군대에 입대하게 된다.

 

 

서울에서 대학생활은 못했지만 군대에서는 운 좋게도 서울에서 근무를 했었다. 덕분에 서울에서 좋은 경험들도 많이 했다.

군대에 있는 동안은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기 위해 군대에서 할 수 있는 활동이나 독서를 하며 최대한 생산적으로 시간을 보내려고 했었다.

또한 다양한 사람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내가 해보지 않았던 일들을 간접적으로 경험했다.

그러다 전역을 앞두고 사이버 지식정보방에서 인터넷을 이용하고 있었는데, 옆자리에 후임 한 명이 코딩을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 당시의 나는 코딩이란 단어의 의미도 정확히 모르고 그냥 검은 화면에 영어를 막 쓰는데 뭔가 멋있어 보여서 계속 구경하고 있었다. 

몇 분 지나자 간단한 홈페이지 하나를 만들었다며 나에게 보여주었는데 이걸 금방 만들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짧은 시간에 만든 홈페이지라 퀄리티가 높지는 않았지만 그 당시의 나는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처럼 보였다. 

후임이 나의 반응이 좋았는지 자기가 학교 다닐 때 만들었던 프로젝트들을 설명하면서 보여주는데 너무 신기해서 며칠간 귀찮을 정도로 후임을 쫓아다니며 프로그래밍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무언가 특별히 하고 싶은 것도 없고 큰 관심을 가지는 분야도 없던 내가 이 정도로 호기심을 갖는 내 자신을 발견하고 "이거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군대에 있는 동안의 목표는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것, 하고 싶은 일 찾기였는데 전역을 앞두고 하고 싶은 일을 찾게 되었다.

본격적으로 프로그래밍, 개발 분야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알면 알 수록 많은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점점 흥미가 생겨 프로그래밍에 대해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이때 하게 된다.

 

3. In doing we learn

전역을 하고 독학으로 프로그래밍 공부를 시작했다.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기초 강의를 보는데 이해가 명확히 되지 않고 지루했었다.

 

 

그래서 프로그래밍 공부 방법을 찾던 중 클론 코딩을 알게 되었고 유튜브를 보며 무작정 코드를 따라 치면서 결과물을 확인하는데 이게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코드 한 줄씩 이 코드가 무엇을 의미하고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아가며 공부하는 게 이해가 잘 되고 재미도 있었다.

내가 평소에 사용하던 인터넷 창이 어떻게 구현되었는지 알게 되고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던 작은 기능들이 생각보다 복잡하게 짜인 코드라는 것도 알게 되니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이해가 됐다.

 

지금까지는 남들이 하니까, 해야 돼서 하는 수동적인 공부를 했다면 지금은 더 알고 싶고, 궁금해서 하는 자기 주도적인 공부를 하게 되었다.

프로그래밍에 대해 공부하면서 자연스럽게 개발자가 되고 싶다는 "목표"가 생기게 되었다.

 

4. Will is power

아직은 기초적인 부분을 공부하기 때문에 재밌다고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분명 내가 좋아하는 공부라도 항상 재미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어려운 부분을 마주하면 좌절하고 포기하고 싶은 생각도 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그런 상황들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편입 공부하면서 길렀다고 생각한다. 

남들이 봤을 때는 편입한 게 뭐가 그렇게 대단한 거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나는 편입 공부할 때 얻고 깨달은 것들이 가장 많은 시기였다고 생각하고, 편입을 공부한 1년 동안 단순히 합격이라는 결과만 얻은 것이 아니라 공부하는 과정에서 더 많은 것들을 얻었다고 느낀다. 쉽게 포기하지 않는 방법,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방법 등 공부하면서 마주칠 수 있는 어려운 상황을 대처하는 방법들을 배웠다.

 

무엇을 하든지 쉽게 이룰 수 있는 건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이룰 수 없는 건 없다고 생각한다.

비록 비전공자이고 아직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아있지만 이번에도 개발자라는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